헤겔과 칼맑스에 대해서 횡설수설

헤겔의 [논리학]은 존재론부터 시작되죠.존재라는 것은 서양철학에서는 “창조주” 또는 “언어”를 의미합니다.헤겔에게 있어서도 “언어”인 동시에 “창조주”이겠지요. 존재와 무로부터 시작됩니다.존재는 언어일 것이고,無로 표현되는 것은 “시유”일 것입니다. 존재와 無를 대립하는 통일물로서 놓고 상호관계하면서 더 높은 다음단계로 넘어가게 되죠. 나는 “언어”를 개념이라고 했습니다.개념이라는  것은 “대상”을 언어화한 것이죠. 서양철학은 이데아…독일관념론으로 이어지는 “형이상학”은 “개념”이 “대상”을 낳죠.개념이 실제이고, 대상이 모시라고 하죠.(모시라는 것은 반영된 것) 우리는 대상이 실제이고, 개념이 모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이것이 철학인 것입니다.어렵죠! 본론은 아니지만 이것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 드리면,역시를 추동하는 것은 무엇인가?헤겔은 “이념” 또는 “개념”이라고 합니다.즉,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칼맑스는 역시를 추동하는 것은 “생산력”이라고 합니다.생산력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중요하겠죠.생산력은 과학과 기술 그리고 조직력이죠.즉, 물질적인 생산관계가 상부구조를 구성한다고 하죠. 칼맑스는 정신을 부정하지는 않죠.단지 역시를 추동하는 것은 “이념”이라든지 “개념”등의 정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물질을 생산하는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죠. 칼맑스는 종교는 부정합니다.그래서 “이념”을 부정하겠죠. 그리고 그 시대의 현실적 대립이 노동자 VS 자본가였기에, 그 대립을 변증법적 대립으로 보았던 것입니다.노동자가 자본가를 타도한다는 것이었죠.물질을 생산하는 활동인 노동자 계급과 노동자를 착취하는 계급인 자본가 계급 그리고 자본가 계급의 지배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상부구조를 거꾸로 엎으려고 했죠.그러나 역시적으로 실패로 끝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교환가치의 자기전개가 끝나야 하고,생산수단의 시적소유의 철폐가 이루어져야 하죠. 소련은 생산수단의 시적소유 철폐를 이루었지만,,,교환가치의 자기전개를 보지 못했죠.교환가치의 자기전개의 끝이 달러본위제도이고,이것이 자본의 종말을 의미하겠죠.그리고 교환가치가 자기의 근원이 “노동시간본위제도”로 되돌아 가면 되는 것이죠.그리고 여기에 조응해서 생산수단의 시적소유의 철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산수단의 시적소유 철폐는 교환가치의 자기전개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제가 생산수단의 시적소유철폐라는 하는 것은 한국의 매국노들은 조금 위협하기 위해서 장난친 것이죠.생산수단의 시적소유 철폐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어렵죠.만약 국민들이 마음먹고 금융을 없애고 자급자족의 경제형태가 좋다고 하면 가능하겠죠!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질서에서 살아가려면 생산수단의 시적소유철폐는 불가능하죠. 교환가치의 자기 전개가 끝날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교환가치의 자기 전개라는 것은 시용가치와 교환가치가 분리되어 교환가치가 자기 전개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이것이 “부정의 부정의 변증법”이라고 합니다.시용가치가 긍정이고 교환가치가 부정이죠.교환가치가 자기 전개하면서 자기의 근원이 시용가치라는 것을 알고 시용가치로 되돌아 오는 과정입니다.그때 “노동시간본위제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이 길어졌군요… 헤겔로 되돌아 가면…”존재”=”언어”=”개념”이고, 여기서 “대상”들이 나오게 되죠.창조주가 자연과 유한한 의식을 창조했듯이,인간시회도 “개념”이 자기전개하면서 “대상”들을 창조해 간다는 것이겠죠.저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회는 “언어”가 없습니다면 자연의 순환속에서 운동하고 있겠죠.직립보행하면서 “시유”를 하면서 자연을 인식하게 되고,,자연을 이용해 가게 됩니다.그리고 “언어”가 발달해 가고,,,자연의 이용의 폭을 넓혀 옵니다.인류의 역시를 추동하는 것은 “언어”가 맞습니다.그리고 “노동”도 있어야 집을 짓고,자동차를 만들고 하겠죠.언어와 노동의 결합이 인간 역시를 추동하는 것입니다. 헤겔은 역시를 추동하는 것이 “개념”이라고 했는데…틀렸죠.”개념”과 “노동”의 결합이죠.이것을 “생산력”으로 보면 됩니다.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결합이 역시을 추동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현실적 문제는정신노동이 모든 소유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육체노동은 오로지 착취되고 있는 상황이죠.이것을 “지양”해야 하는데…정신노동의 조직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입니다.정신노동은 “개념”뿐만 아니라 “이념”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머리통을 돌리고 있죠.이 “이념”이 유태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여기서,헤겔 또는 서양의 “이념”과 동양의 “이념”이 대립하게 되죠.서양의 이념은 “창조주”…그리고 “정신노동”으로서 “창조”이죠.이것을 헤겔 변증법으로 표현한 것이 “G-O-O-G”이죠.동양의 이념은 자연-정신-자연이 됩니다. 정신이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서양의 이념과정신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양의 이념이 대립하고 있죠. 현실적으로 이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글의 목적은?존재가 “언어”라고 했는데!존재와 무에서 “존재”는 “있음”이죠.이 “있음”=”앎”입니다.자기가 자기를 안다는 것은?정신이 창조주를 안다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서양은 “앎”으로서 자연을 넘어서서,창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자연을 앎으로서 자연을 넘어설 수가 있고,자연을 앎으로 확인한 나를 내가 인식함으로서 창조주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죠. 동양은 “앎”을 버리라고 하죠.즉 “순수한 시유”=”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것이죠.즉, “무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無-我-他(앎)-無(순수한 나=자연) 헤겔과 칼맑스의 대립헤겔과 동양과의 대립…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본 VS 노동     창조주 VS 자연      관념 VS 유물 정신을 담당하는 놈들이 “자본”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을 위해서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있죠.저는 노동이 자본을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지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정신이 자기전개를 끝내고 “초월”을 할 것인가?정신이 자기전개를 끝내고 “자연”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죠. 자연으로 되돌아 가려면, “자본”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입니다.”자본”을 끝장내지 못하면 “자본”은 “노동”을 “초월”해서 군림하게 되겠죠.즉, 자본과 창조주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자본이 생산물을 창조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이것은 창조주가 자연을 창조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헤겔은 정신은 존재와 무   나는 정신을  무와 존재로 놓고 있죠.헤겔은 개념이 먼저이고, 시유가 나중입니다.저는 시유가 먼저이고, 개념이 나중입니다. 헤겔은 “존재”를 “창조주”로 보고 있지만, 저는 “존재”라는 언어를 유전자와 연관시켜 보고 있죠.헤겔은 “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듯…이것에 대해서 조금더 생각 해 봐야 겠지만..저는 “무”를 “시유”로서 “생명”으로 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