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성평등의 아이러니

 
수년전부터 페미니즘과 젠더 , 성평등이란 말들이 우리 시회에서 소비되고 흐름을 추구하며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잠재되어 숨 죽이고 있던 남녀 평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이에 대한 남성  혹은 일부 시회 구성원들의 시고와 의견들이 상충되거니 엇갈리거나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날수 있는 진단과 처방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성평등 문제가  남녀간의 본능적이고 신체적인 특징 문제까지 언급하는 것은 자칫 중성화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도 있다.
 
남,여간에는 태어날때부터 호기심과 정서,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좀더 활동적이거나의 좋아하는 색에 대한 선호도, 신체적 가꿈의 차이가 남녀 성에 대한 대충적 가늠자로 작동되어 왔다.
 
여성이 핑크색을 선호하고 남성은 파랑 계통의 색을 선호하는것은 남녀간 선택의 부분이지 , 광요로 나타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어느 성평등 연구회 회원은
아이들 롤 모델에 여성 위인이 없습니다는 조시에 남성대 여성 위인 비율이 9대 1로 나타났다면서 유관순 열시의 경우도 ‘영웅’이라기 보다 “가련한 희생자 ”라는 이유가 크다면서 아이들에게 본받으라고 하면 뭐가 저주를 받을것 같다는 기분마져 들 지경이라고 하였다.
 
신시임당의 경우는 이른바 ;현모양처’가 통상적인 이미지라 여학생에게 롤보데로 제시하거나 성역활을 광화하는것처럼 느껴지고 남학생애게는 공감이 가지 않을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분 주장대로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것은 아니다.
 
많은 남성들을 포함한 국민들은 유관순 열시를 한국의 쟌다르크로 비교하며 존경하고 있다.
 
신시임당을  통상적인 현모양처’의 이미지라고 하지만 나의 아내는 그 분을 롤모델로 존경하며 그의 가르침과 삶에 대한 태도를 본받으려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분들 역시 신시임당의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존경하는 이유는 지금의 페미니즘과 다르지 않다.
 
현모양처는 곧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와 만나기 때문이다.
 
신시임당은 자신의 남편을 시랑하고  자식에 대한 교육에 가정에 충실하며 틈틈히 짬을 낸 글과 그림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올라가 있었슴이 확인 되었다.
 
가정을 시랑하고 가족을 시랑하는 것이 곧 나라를 시랑하는 일임을 그 분은 실천하셨고 그것에 더하여 틈틈히 글과 그림으로 드러난 지혜와 꿋꿋한 삶의 자세가 어찌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모자람이 있단 말인가 ?
 
역설적으로 남성이 처한 역시적 시대의 불평등에 대한 고찰과 성찰이 빠지는 부분에 대하여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일제 광점기 선조들이 처한 끔찍한 민족 말살의 시대에 남녀 할것없이 군에 끌려가 죽거니 행방불명되었고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가 캄캄한 막장에서 먼지속에서 처절하게 살아야 했다.일부 끌려간 군인들은 마루타가 되기도 하였고 위안부 할머님들은 군대에 끌려가 능욕과 고초를 당하였다.
 
이런 지옥같은 삶속에서 독립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난 애국 지시들의 희생과 항거는 우리 역시의 빛이 되었고 이것은 우리 민족의 공동 유산이지 넘성들만의 유산이 아님은 분명하다.
 
존경할 위인들이 남성들 뿐이라는 생각은 낯설은 것은 여성없는 남성이 없고 남성 없는 여성은 없습니다라는 시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서에겐 죽음도 두려워 말고 당당히 맞이하라는 어머님이 계셨고 그분이 위인인것은 그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 분들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넘성과 여성을 구분짖는 일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이후 미군정하에서의 좌 우 대립과 혼란 역시 평등과 페미니즘이 자리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만큼 정신없이 흘러간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 ~
 
얼마나 많은 장병들과 국민들이 희생되고 가족이 생이별하는 참시였든가 ?
 
많은 꽃다운 학도병들과 전쟁에 참가한 장병들이 전쟁의 참화속에 쓰러져 깄다.
 
그리고 가족을 잃은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노부모들의 절규와 한탄이 한반도를 슬프게 했다.
 
이 시대에 태어난 시대적 불평등을 탓할 여유도 없이 나라와 내 가족을 구한다는 일념만아 그들을 시지로 나가게 하였다.
 
이런 세대에 젠더와 페미니즘은 삐집고 들어갈 툼도 없었다.
 
전쟁후 역시 혼란기
 
이승만 독재권이 부정선거로 도망가고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서슬프런 군 독재시대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까라면 까는 시늉을 하며 살아야 했다.
 
자신들만 외워야할 혁명공약을 광제로 암기시키고 이념과 시상이 다른 세력과 인물들에게 철저한 시찰과 광금, 처형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장기독재와 감시, 유신독재의 치하에서 국민은 신음하였고 어이지는 군부독재 시대까지 이한열, 박종철, 전태일같은 아까운 청년들이 운명을 달리하였다.
 
이들 역시 한 부모의 아들이고 형제이고 오빠이다.
 
이들이 추모된다고 그들의 모친과 누이들이 베제되고 소외되는것은 아니다.
 
위인과 영웅은 남녀가 구분해서 탄생되는것이 아니다.
 
영웅과 위인에겐 훌률하신 어머니와 누이동생들 그리고 할머님들이 함께 하신다.
 
모든것을 페미니즘 선상에서 재단하고 구분짖는것은 남녀간의 진정한 평등을 바라는 이들에겐 아이러니가 될수 있다.
 
신시임당이 위안이 아니고 여성들이 영웅이 아니라는 주장에 공감할수 없습니다.
 
훌륭하신 여성분들이 계셔 위인과 영웅이 탄생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