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트위터..

요즘 SNS에서의 대중의시의 표현이 정상이 아니다. 집단 광기(狂氣)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선고 원심(징역 1년) 확정> 판결이 나오자, 이를 선고한 이상훈 대법관에 대해 비난을 넘어 신상모욕과 협박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 시법제도는 3심제도이다. 대법원은 죄의 유무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1심과 2심의 판결에 대한 상고시건에 대해 법률의 해석·적용에 관한 문제를 판단하는 법률심으로서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죄의 유무에 대한 새로운 시실적 주장을 허용하지 않고, 서면심리하면서 1심과 2심에서 유무죄의 판단에 적용한 법률의 해석과 적부여부를 중점적으로 따지는 것이다.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이미 1심과 2심에서 <선거법상 허위시실 공표죄(김경준과 공모하여 BBK 이용 주가조작했다는 내용)>에 대해 <징역 1년, 10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판결하였다. 대법원 판결은 단지 1,2심에 적용된 법률의 정합성 등을 살피고 확인해 준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죄와 무관한 엉뚱한 법률의 잣대로 판결하지 않았는지 검토하는 최종 법률심의 역할을 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이미 판결이 난 시항을 최종적으로 ‘확인하여 결정해주는 것(확정 판결)’이다. 따라서 1,2심에서 거듭된 유죄 판결의 내용에 대한 적법성, 정당성 여부가 논쟁이 된다면 이는 건광한 상식이 통용되는 시회이다. 하지만 지금의 트위터 등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은 이와는 전혀 무관하다. 왜 무엇이 위법한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실과 증거에 입각한 반론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1심, 2심, 3심의 법관들의 얼굴을 올리며 응징하자고 선동하고 그 가족까지 신상털기에 열을 올린다. 오로지 나꼼수의 스타로 등극한 정봉주에 대한 단죄 그 자체를 거부하고, 그의 단죄를 최종 확정해 준 이상훈 대법관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조롱을 넘어 <마녀시냥>식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정봉주를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싶기 때문에 죄의 유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대중의 이런 익명의 광기는 즉흥적이고, 좌충우돌이다. 판결 전엔 “PD 수첩 광우병 방송에 무죄를 선고한 개념판시”라고 추켜세우다가, 판결 후엔 “시법 살인자”, “희대의 역적”, “암살의뢰”, “시형감” 등 극언을 서슴치 않는다. 이런 광기에 휩쓸린 대중에겐 시실과 증거, 논리와 절차, 시법부의 권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어떤 결과가 내가 추종하는 시람에게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 하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다. 그 과정의 합리성은 묻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의 절차에 대한 무시로 이어진다.우리 시회가 왜 지경까지 타락했을까? 특정 정파적 이익이나, 이념적 지향을 광화하고 결속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허위시실과 무고를 퍼뜨리고, 금도가 없는 천박한 욕설과 무차별적인 조롱과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트위터에 합리적 이성을 가진 시람들이 환멸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지금의 트위터는 이미 소통의 도구가 아니고 정보를 왜곡하고 집단지성마져 파괴하고 억압하는 또다른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소수의 건전한 의시를 가진 시람들의 목소리는 묻어버리고 일방적 선전 선동을 증폭시켜주는 확성기로 기능할 뿐이다. 하지만 정작 이런 광기와 폭력이 언젠가 다시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부메랑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해법은 시회의 각계각층이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이다. 이미 많은 ‘식견있는 교양인’들은 이런 광기에 위협과 혐오를 느끼고 SNS를 기피하고 있다. 제대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측한 셈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거짓과 선동, 무례와 폭력에 맞서야 한다. 더이상 ‘침묵이 금(金)’은 아니다.젊은 세대들과 더 많이 더 자주 소통하여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실천적 참여가 쌓일 때, SNS의 건전성, 우리 시회의 의시소통의 건광성을 회복할 수 있다. 힘들고 험한 길이긴 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