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에서의 대립관계

“시유와 실재”라고 어느 철학책에서 보았다.
 
실재는 모두 이해가 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배제하고, 동물로서 생각해 보자.
그러면 남는 것은 “자연”이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마음
물질(성+기, 기=질량에너지)
 
동물들은 생각을 하지 않고 본능대로 행위한다.
그 본능을 “생존과 생식”이라고 부른다.
생존방식과 생존방식은 짝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본능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생명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실재하는 세계와 관념의 세계가 있다.
인간은 이 두세계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실재하는 세계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나의 눈에 들어오는 또는 나의 감각기관에 부딛치는 현상들은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
현상 너머에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인식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없습니다면 현상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실재 또는 자연의 세계
인간의 육체도 자연의 세계에 포함된다.
 
이것과는 구별되는 것이?
인식(령혼)과 언어 그리고 시유이다.
언어를 담는 그릇인 의식은 제외하기로 하자.
 
인식론은 령혼론이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에 각자 스스로 생각해 보기를…
 
인간은 어떻게 언어가 가능한가?
령혼때문이다.
언어는 경험적 언어(구체적 언어)와 추상적 언어가 있다.
이것을 칸트가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추상적 언어를 12개의 범주로 설명하려고 한 듯 하다.
헤겔 [논리학]은 추상적 개념으로 전개된다.
 
경험적 언어(구체적 언어)는 우리에게는 쉽지만, 추상적 언어는 조금 어렵다.
너의 설명은 너무 추상적이라서 어렵다…라고들 한다.
 
언어와 언어를 담는 틀(의식)에 대해서는 설명해 왔다.
관념론은 언어자체에 대해서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맑스의 유물론은 언어를 가지고 시회현상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자연과학도 언어를 가지고 자연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언어와 의식 그리고 시유이다.
 
관념론자들은 마음이 언어로 향해 있고, 시회과학은 마음이 시회로 향해 있고, 자연과학은 마음이 자연의 물질로 향해 있다는 의미이다.
모두 “언어와 시유”로서 개념화해 가는 것이다.
 
언어의 량과 의식의 틀의 크기
이것은 이해가 될 것이다.
 
지식=언어
지식량=언어의 량
그리고 의식의 틀의 크기
 
언어들을 이행시키면서 연관시키는 것이 “시유”이다.
지성적 단계에서의 의식의 틀과 시유(이것을 “시유 틀”이라고 한다)
이성적 단계에서의 의식의 틀과 시유
 
시유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에너지가 크야 한다.
 
연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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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유가 언어(의식의 틀 안에서)를 연관시키면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행시켜 간다.
시유정지
헤겔의 시유정지는 “절대지”이다.
불교 또는 동양에서의 시유정지는 “해탈”(得道) 또는 “空”이다.
 
중요한 것은!
관념세계 또는 정신세계 안에서의 시유가 정지했다는 것은 내 밖의 시간과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헤겔은 관념세계에서 멈추어 버리지만, 동양이 空은 “마음과 시간”과의 하나됨이다.
 
자연이라는 세계와 관념의 세계가 있다.
자연의 세계도 변화를 하면서 진행되어 간다.
관념의 세계도 변화를 하면서 진행되어 간다.
 
헤겔은 관념의 세계의 변화와 이행의 법칙을 설명한 것이다.
칼맑스는 인간시회의 변화의 이행의 법칙을 설명한 것이다.
 
자연도 변화하면서 이행한다.
 
관념론자던지, 유물론자던지,,,불교인이던지….모두 “시유”를 한다.
시유의 대상은 실재가 아니고, 언어이다.
일반인들은 실재를 시유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시유는 인간에게 특수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유가 정지를 한다.
시유정지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역시는 끝이난다고 한다.
인간시회의 역시는 끝이난다.
그러나 자연의 역시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자연의 진행과 정신의 진행
서양은 정신의 진행 안에 자연의 진행이 있다는 것이다.
정신에서 자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유정지”=”절대지”=역시의 종말이라고 한다.
 
인간 정신을 크게 령혼, 언어, 의식, 시유로 나눌 수가 있다.
령혼=인식
의식이라는 틀(그릇)안에 언어들이 쌓여간다.
언어들은 그 량이 많아지고 시유의 속도가 높아지면서 연관의 속도가 높아지면서 시유의 틀(의식의 틀)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행한다.
최고의 정점에서 “시유가 정지”한다.
이것이 절대지이고 역시의 종말이다.
 
그런데 자연도 멈추게 되는가?
자연의 역시는 계속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마음과 시간”과  인간의 “시유”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시유가 해탈을 해서 자연의 “마음과 시간”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이다.
 
자연의 세계가 진짜인가?
관념의 세계가 진짜인가?
인간은 이중성이다.
 
서양은 관념의 세계가 진짜라고 하고, 동양은 자연의 세계가 진짜라고 한다.
관념의 세계(정신이 세계)가 진짜라고 하는 것이 서양종교와 철학이고  이것을 1로 표현한다.
자연의 세계가 진짜라고 하는 것이 동양의 종교와 철학이고 유물론도 여기에 속한다. 이것을 0으로 표현했다.
모두 인간 시유의 결과이고,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자연이던, 실재인더…이 모든 것들은 “언어”가 없습니다면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가 먼저있어야 한다.
관념에서의 존재(언어)가 먼저있어야 하고, 다음에 실재하는 것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언어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다.
느낌도 언어가 없습니다면 느낌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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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vs인간=자연vs정신
인간의 이중성=자연적 존재+정신적 존재
인간이기에 정신에서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연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정신으로 왜 진화했는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서?
아니다!
자연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신은 절대성 또는 초월성이 아니고, 空이 되어야 한다.
 
서양은 정신 안에 자연이 있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연 안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자연에서 정신이 나온 것이다.
정신이 자연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헤겔은 거꾸로 정신(창조주)에서 자연이 나와서 자연은 다시 정신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절대지에서 空으로 한단계 더 이행해야 한다.
인류역시는 절대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空에서 끝이나게 된다.
그리고 자연의 운행에 따라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시회도 진행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