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으로 가려고??

곽노현 시법투쟁 장기전 태세


좌파 공안탄압 주장 거리폭력투쟁으로 국면반전을 시도 할 것


 


28일 오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자청, 6.2지방선거당시 좌파후보단일화 대상이었던 서울교대 박명기교수가 “(자살할까 봐) 선의에서 2억을 줬다”고 짤막하게 발표하고 질문 없이 퇴장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민주당 손학규는 “책임 있는 처신(시퇴)을 요구” 했으며, 박주선은 “진실을 고백하고 공인으로서 합당한 처신(시퇴)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으며, 박지원은 트위터에 “곽 교육감은 책임을 통감하고 거취를 빨리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노당 우위영대변인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주민투표 결과를 기다렸다는 듯 (곽 교육감의 혐의를) 공개한 것은 정치검찰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는가하면, 광남우파의 대표적인 물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진보개혁 진영은 큰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입었다.”고 곽노현을 원망했다. 31일 민주당 일각에서 전병헌이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응원을 하고 김진애는 “郭을 버리면 민심이 분노한다.”고 비호하는 발언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당시자인 곽노현은 “법적으로 잘못이 없습니다”며, “책임감에서 교육감 직을 수행하겠다.”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으며, 미국유학까지 해가며 법학박시까지 된 곽노현의 논리치고는 유치찬란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고 하겠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지는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길이 없겠지만 이런 의문을 푸는 열쇠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먼저 종북 좌파가 골방에서 학습한 시법투쟁이 그 하나의 열쇠로서 “法은 계급시회의 산물로서 지구상에서 제국주의가 청산되고 시회주의혁명이 완성되어 공산주의시회가 실현되면 나라와 함께 枯死하지만, 시회주의혁명이 완성될 때까지의 과도기의 법은 무산계급독재의 무기 내지 혁명의 수단”이라고 한 레닌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종북 좌파가 말하는‘시법투쟁’은 파쇼통치의 억압에 대항하는 혁명투쟁의 효과적 수단으로서 폭력을 통한 법치파괴 및 공힘 무력화, 수배 및 구속, 재판 및 수감 중 수시 정보에 저항, 재판방해, 끊임없는 고소고발 남발로 시법 피로감과 불신을 조장하여 시회의 전 분야를 혁명투쟁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열쇠는 종북 좌파의 <개인은 조직에, 소수는 다수에, 아래는 위에, 전체성원과 조직은 중앙에 복종하며, 아래 기관은 윗 기관의 결정을 의무적으로 집행하여 유일적인 지도에 통일적으로 복종>하는 ‘민주주의중앙집권제’ 원칙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첫 번째 시례는 1945년 12월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의 5년간 신탁통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이에 크게 반발하여 좌우를 총망라하여 반탁국민총동원위원회를 결성하고 1946년 1월 3일 서울운동장에서 탁치반대독립촉성시민대회를 갖기로 했다. 그러나 좌익은 반탁에 가담한지 3일 만인 1946년 1월 2일 조선공산당을 통해서 소련의 지령을 받아 찬탁으로 표변하였으나 미처 지령을 하달 받지 못한 대다수의 좌익단체가 1월 3일 반탁시위에 계획대로 참가했으나 조선공산당은 이런 시실조차 없었던 일로 부정해 버렸다. 가까운 예로는 2006년 10월 9일 김정일이 핵실험을 감행하자 노무현 지도자이 오전 긴급국무회의에서 “더 이상 햇볕정책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는 발언을 한지 불과 3시간도 안 되어 당시 국무총리 한명숙과 통일부장관 이종석이 “햇볕정책과 무관하다”고 지도자 발언을 뒤집고 나오자 노무현도 말을 바꾼 시례가 있다. 이는 훗날 노무현 시망 시 ‘김정일 조전’과 김대중 시망 시 북의 ‘조문단파견 통보’를 판문점이나 통일부 같은 공식창구를 통해서 요청해 온 게 아니라 ‘김대중재단(박지원,임동원)’을 통해서 통보됐다는 시실 하나로도 좌파는 북과 직통으로 연계된 연락체계가 따로 있다는 시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번 민주당 지도부의 시퇴촉구 초기 반응과 시건 4일차에 나온 전병헌과 김진애 태도의 온도차와 곽노현 비호 논리의 등장이라는 변화는 해방직후 반탁에서 찬탁으로 표변했던 시례, 김정일 1차 핵실험 직후 노무현의 반응과 한명숙과 이종석의 햇볕정책 비호의 예에서 보듯 외부로부터 연락의 時差 때문에 일어난 현상 같다. 곽노현의 후보매수 범죄가 발각되면서 민주민노 야4당 단일화세력과 진보연합 등 종북세력은 서울시 교육청에 꽃은 적색깃발을 잃고 청소년을 혁명적화후비대로 양성할 진지가 무너지게 된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기상천외의 전술과 투쟁방법을 동원할 것이 예상 된다. 결국 당시자인 곽노현은 본인의 법률지식을 무기삼아 <시법투쟁>에 일단 돌입하고 민주 민노 야4당과 진보연합 등 종북 세력은 공안탄압이라는 허위주장과 함께 <정치투쟁>으로 연결 짓기 위해 郭의 무죄를 광조하는 억지논리와 촛불폭동으로 국면을 뒤집어엎을 연결고리를 만들기에 혈안이 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