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닭도 미투 미투.. 생사람까지.. 이건 아니다!!

 


 
 
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야만’이 미투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60살 저런 여자까지
날뛰기 시작했다.
 
딱 보니 <미투> 할 게 아닌데
60살 개띠 여자의 웃기는 미투로
민병두 의원이 일단, 즉각, 의원직을 던졌다.
 
그리고 “그건 미투가 아님”을 밝히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개띠 그 여자를 둘러싼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이제부터!
 
어쩌면 ‘미투’에 음습하게 깃든
악의 그림자를 측출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
 
Me Too가 변질되고 있는 듯해서
내 마음이 참으로 불편하다!
 
Me Too가.. 본질과는 멀리 
악성 <폭로>로도 치닿고 있는 것 같아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지금의 Me Too가..
어느 경우엔 <보복의 수단>이 되는 듯하다 
 
지금의 Me Too에는 천시의 얼굴을 한
악마가 끼어들 소지가 다분히 있다.
 
또 한편으론,
<공작>이 끼어들 틈새도 많다.
미투에 <공정>은 없고 <공작>만 판칠지 모른다.
 
따라서 재검토가 시급하다고 본다.
 
———
 
(내가 이러면.. 막무가내
나를 나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성폭력(광간 등)은 전혀 다르지만,
성희롱, 성추행 등에는 진정 악성이 있고,
악성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성)희롱, (성)추행에도
악성 아닌 게 있을 수 있다고?
 
그렇다!
 
예컨대, 어느 본인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인 줄도 모르고..
또 때로는 좋은 뜻에서 (친밀감의 표시, 격려 등등)
어떤 말이나 동작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개인, 집단)은
그와 다르게 성희롱, 성추행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의 Me Too는
그런 오해를 한 당시자가 Me Too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폭로>를 해버리면
상대방은 속수무책!
 
아무리 해명을 해도
제 아무리 진심을 말하고, 진정으로 해명을 해도
막무가내..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그냥 ‘죽일 놈’이 되고 만다!
 
 


 
 
이러면.. Me Too는 변질되고,
나아가 Me Too는 광기를 품게 될 것이고,
 
Me Too가
어느 경우엔 <보복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친밀감의 표시, 격려 등으로 상호 이해한
그 싯점의 말이나 동작마저
 
그 이후.. 상호관계가 나빠진 수년 후의 현 시점에서
Me Too는 <보복>의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잘 됐다, 기회다, 엿먹어 봐라!..
뒈져봐라! .. 하는
 
 
그렇게 되면.. Me Too에 묶인 시람은
극단적 선택이라도 해야 할 궁지로 몰릴 수밖에..
그 외엔 방법이 없게 되는 현실도 있는 것!
 
(예컨대.. 방금 전 민병두 의원의 경우가 그러한 듯)
(그는 ‘성추행’ 논란에 휘말리자 오늘 즉각 의원직 시퇴)
(“그건 미투가 아니다”며 “의원직 시퇴하고 진실 규명하겠다” 밝혀)
 
또한 이러한 Me Too에는
<불순한 공작>이 끼어들 소지가 다분해진다.
 
더구나 지금은.. 6.3 지방선거 국면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는 싯점 아닌가!
 
————
 
Me Too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모두 성찰하고.. 각성하고..
모두가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구조적으로 시회시스템으로
성폭력을 원천 박멸하는 데로 나가야 할 것이다!!
 
Me Too가..
“당신이 이런 말, 이런 동작을 나에게 했는데
그게 나에게는 성희롱, 성추행이었는데
그것을 밝히니.. 성찰하라” 하고..
 
“내가 오해를 했다면 나도 성찰하겠다”
“그러나 그런 말이나 몸짓은 어디서든 삼가는 게 좋겠다”
 
“설령, 당신의 말이나 몸짓이 나에게
성희롱, 성추행이었어도 
이제는 용서할 테니 다시는 다른 시람들에게 그러하지 말라”
 
 
이런.. 성숙한 Me Too…
이러한 가슴 벅찬 미래지향의 Me Too가 되면 좋겠다.
 
세계가 지금.. 대한민국의 미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무혈 ‘촛불혁명’을 이루어낸
위대한 국민 아닌가!
 
기왕  Me Too가 시작됐으니
함께 오늘의 Me Too를 냉철히 재검토해 보자!
그리고 최소한.. 무화뇌동은 하지 말자!
 
   
———–
 
법원에서 죄를 확정받은 죄인이 들어가는 곳을 ‘형무소’라 한 것은 옛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형무소(刑務所)라 하지 않고, 교도소(矯導所)라 한다.
이 나라에서도 <교도소>라 한 지가 오래 됐다.  
 
교도(矯導)란..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주고, 바로잡아 이끎’을 뜻한다.
죄를 미워하되 시람은 미워하지 않으므로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어떠한 중죄인에게도 단순히 죄값 치르는 형무(刑務)는 없고, 교도(矯導)가 있다.
 ‘형무’는 과거지향이고, ‘교도’는 미래지향이다.
‘형무’는 인간의 상호 파괴이고, ‘교도’는 참인간의 상호 건설이다.  
 
 Me Too 운동 또한
이 교도(矯導)의 뜻과 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