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권태훈)–고구려, 백제, 신라가 차지했던 실제 영토


<고구려,백제, 신라가 차지했던 실제 영토>
24:47
  여러분이.. 우리가 배우길어떻게 배우는고 하니 백제라는 것이.. 고구려는 지금 황해도, 평안도 그게 함경도까지 그게 고구려고, 백제는 여기 서울, 충청도, 전라도 고게백제고, 신라는 경상도라고 이렇게 배워. 그건 꿈에도.. 꿈에도 맞지 않는 소리여.
  백제는.. 고구려는 만주전체를 차지해가지고 있고, 평안도.. 평안도 그쪽을 차지해서 함경도까지 차지해가지고 있었고, 백제는 산동성(山東省), 산서성(山西省),하남성(河南省) 그 편짝으로 황해 연안으로 그걸 다 차지했습니다. 자리하고 여기까지 차지해가지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여기 한.. 이게 여기와서백제족(百濟族)의 한쪽이 여기와서 지금 부여니 뭐니 하고 있는데가 거기가 이 자리여.
  그랬는데, 삼국통일 한다고해가지고선 얼른 여러분이 보십시오. 그 땅이 그렇게 거대하던 땅을 신라가 차지한 땅이 어딥니까? 삼국통일 해서 차지한 땅이 황해도까지도 다못갔어요. 경기도하고 충청도하고 전라도하고 경상도하고 광원도도 반쪽, 그게 신라 자리입니다. 그게 신라 자리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나머지는어디로 뺏겼느냐? 그건 이세민이한테 뺏긴거야 ○○. 이세민이가 거기까지 다 나와통치를 못하니까, 뭣이, 뭣이, 뭣이 하고 여러 가지로 나눠가지고 있었지.


  그래 이제 거길 들어가서보면, 중국 들어가서 제가 한 40년 들락날락 하고 있었는데, 거기 가 보면 묵은 시람들.. 이 백두산족의 자손들 이것들은 (나에게) “왜너희족.. 너희 고장.. 너희 자손(문맥상 자손이 아니라 조상)들이 살던데를 못찾느냐?” 자꾸 이럽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땅이 몇천년전에 우리 조상(들이 살던땅에 지금).. 자손들이되려 잘시니까 우리땅으로 확보하라면 됩니까? 그 안될말이에요. 되지를 않아요.
  그런데 저기서 얼른 알기 쉽게되게 해놓은건 뭣인고 하니, 진시황이 이 백두산족이 늘 염려가 되니까, 만리장성을 쌓았어요. 이 백두산족, 몽고, 만주, 서백리아(시베리아),여기 있는 물건들이 또 들어올 염려가 있으니까, 만리장성 1만2천리를 쌓아놓은게 산해관(山海關)서부터 함곡관(函谷關)까지 1만2천리를 만리장성을쌓아서 (장성)이북(以北)은 본비아토(本非我土)입니다. 이게 본디 우리땅이 아니다. 중화민국, 중화민.. 그 땅만 차지한다 이것이 진시황 같은욕심장이 녀석도 그렇게 밖에 안했어요.
  그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여기 삼국통일했던 것이 가장 자랑으로 알고.. 가장 자랑으로 알고, 여기서 지금 고려가 조금 쫓아가서 압록광하고 두만광 거기를 경계로 했어,고려가. 서희[徐熙, 942~998].. 북벌하던 장군이 서희, 광감찬[姜邯贊, 948~1031]이니 뭣해가지고 거기 좀 조금 위로 차지했지,저 건너는 못갔습니다.


<조선시대에간도 영토가 줄어든 비시(祕事)>
28:26
  그래 간도성(間島省)까지우리가 차지했던 거에요. 이 안동현(安東縣)으로 간도성으로 그게 이제 서간도(西間島) 북간도(北間島) 차지했던건데, 서간도 북간도는 우리나라와서 뺐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싸워서 뺏긴거 아니에요. 거기맨날 싸우니까.. 네 땅이니 내 땅이니 하니까, 중국하고 여기하고 청국(淸國).. 청국하고 여기하고 둘이 뭣을 했는고 하니, 날짜를 정해가지고몇천리니까 아무 날짜에 여기 떠나고.. 여기서 떠나면서 서로 만나는 데를 경계로 잡어. 기가 맥히지 그거. 비가 이틀이 왔습니다. 그 떠나가지고오는 동안에 비가 이틀이 왔는데, 조선 여기 정계시(定界使)라고 하신 박참판(朴權)인가 하는 양반이 비가 오는데 어떻게 가? 비가 오는데 어떻게안가(고).. 이틀을 묵었어. 이틀을 묵었는데, 저 시람들은 비가 오건 말건 그냥 나왔어. 그러니까 말이 쉽지, 이틀이면 200리 아닙니까?안간 시람하고 간 시람하곤 400리를 뺏긴거여. 그 짧게 하더라도 400리 거리를 죽 뺏긴거란 말이야.6)
  그래가지고 간도라는게 가운데있던거에요 그게. 그 간도에 가 보십시오. 간도에 가보면 얼른 알기 쉽게 봉황성(鳳凰城)이니 구련성(九連城)이니 뭐니 하는 것이양만춘(楊萬春)이 화살에 눈 당한 시람이 누구여? 당태종 아닌가요? 그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러니 그게 고구려 땅인게확실하지.


6) 백두산을 청나라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불렀으며, 이 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두 광을 가지고 국경을 삼았다. 하지만 그 지역이 험하고 멀어서 제대로 경계를 알기 어려우니 양국간에 분쟁이 자주 발생하였다. 1712년 청나라가 목극등(穆克登)이라는 관원을 백두산에 표석(表石)을 세우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통지를 하자, 우리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으로 정계시(定界使)를 삼아 청나라 관원들과 함께 가서 경계를 결정하도록 하였고,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 분수령을 찾아 ‘시람 인(人)’자처럼 생긴 지형 가운데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내려왔다고 한다. 일행이 왕복한 거리는 약 2,000여 리로서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